쫓기듯 관악 캠퍼스를 나와 광화문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의 여러 전시관에서 찬란했던 문화유산들을 훓었다. 장엄한 현대식 신축 건물은 감흥을 달아나게 했다. 아쉽게도 애들은 문화유산 보다 현대적인 시설에 더 놀이 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수학여행 때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번쩍이는 금관이나 분청사기를 보고서도 도무지 귀한 줄 몰랐으니 어린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월의 무서움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피곤하다는 가족들과 굳이 경복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모처럼의 한파에 날씨가 어둑해지더니 눈발이 흩날렸다.
오후 5시가 넘어 경내엔 들어가지 못했다. 근정전을 지나 경회루에 가고 싶었는데, 한참이나 흥례문 앞에서 궁궐 담장 너머로 경회루 연못의 잔잔하던 물결을 떠올렸다. 연못을 배경으로 시골 중학생과 음악 선생님이 사진을 찍었던 그 곳에 못내 서고 싶었다.
지금은 그 사진조차 볼 수 없다. 이사를 자주 하던 통에 사라져 버렸다. 선생님이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으며 내 어깨를 포근히 감싸주던 그 감촉은 그대로 내 가슴에 인화되었다.
홍일점이었던 선생님은 남자 교사들 틈에서 혼자 주무시기 적적했던지 남산 귀퉁이 어느 허름한 여관방에 까까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을 청했다. 잠든 척 뒤척이면서 오랫동안 곤히 잠든 선생님의 향내에 코를 묻었다. 그 수학여행은 성년이 되기까지 내가 경험한 유일한 여행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 채 끝나기 전에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 선생님이 편지를 냈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그리워도 그리워 마라는 근거 없는 깨달음이 지배했던 까닭이다.
그 후로 선생님은 결혼을 하셨을 테고, 또 아이도 낳아 장성해 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보고 싶은 이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산다는 마음 씀은 가끔 먼 길을 나서게 한다. 눈오는 크리스마스 날, 서울에서 그때처럼 하룻밤을 묵고 과천 과학관으로 급히 갔다.
돌아오는 길에 도시의 번잡함만 보여준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선생님도 아마 그 때 그랬을 것이다. 세월의 무게는 어린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 세월이 훌쩍 흘러서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조선왕이 살던 경복궁 주변을 서성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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